生きるための自由研究

脱・引きこもりできそうにない半引きこもりです。

엔데의 모모【지금 이 순간을 아낀다】

 미하엘 엔데의 “모모”에서 지금이라는 순간을 아끼고 다른 사람과의 대화에서 경청이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어느 날 동네 낡은 투기장에 모모라는 소녀가 나타났다. 모모는 투기장에서 먹고 자고 있었다.

 

 동네 사람들은 처음에는 호기심 때문에 모모를 찾아왔지만 어느새 모모와 대화를 줄기기 위해모모를 찾는 사람이 많이 늘어났다.

 

  모모에게는 신기한 능력이 있었다고 한다. 고민거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모모와 이야기를 함으로써 고민을 해소할 수 있었다. 특별히 모모에게 초능력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모모는 단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있었던 것뿐이었다. 사람과 사람이 서로 교류하고, 정직함과 섬세함을 가지고 소통을 나누는 것이야말로 사람의 생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을 엔데는 꿰뚫어 보고 있었다.

 

 이것은 의존증 등의 정신 장애 자조 그룹의 모임에서 실천되고 있는 “정직하게 말하고 상대의 말을 경청한다”는 것과 비슷하다. 사람은 다른 사람과의 대화 속에서 살아갈 힘을 회복하게 된다는 것은 거짓말이라고 치부해 버릴 수만은 없다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동네에 시간은행에서 온 잿빛 남자들이 나타났다. 그 남자들은 동네 사람들에게 “지금의 생활 속에서 낭비하는 시간을 줄이면 장래에 줄인 시간만큼의 좋은 시간을 즐길 수 있다”며 시간을 절약하라고 제안을 하는 것이었다.

 

 돈이 되지 않는 행위나 비효율적인 행위를 낭비로 단정하며 줄여가는 것이다.

 

 어느 이발소 아저씨는 그 때까지는 일하는 틈틈이 마음에 있는 동네의 친한 아줌마와 만나서 대화를 즐겨 하곤 했다. 그러나 잿빛 남자들은 “다른 사람과의 대화는 시간 낭비다. 대화하지 말고 일만 하면 된다”며 일의 효율성만을 요구했다.

 

 동네 사람들은 일의 효율성만 추구하게 되었고 다른 사람과의 교류 등을 시간 낭비로 여기게 되어 동네에 활기가 없어지고 결국 온 동네가 잿빛이 되고 말았다.

 

 다른 사람과의 대화가 시간 낭비가 되면서 모모와 이야기하러 더 이상 사람들이 찾아오지 않게 되었다. 모모는 동네 사람들의 인간성을 되찾기 위해 잿빛 남자들과 싸우게 된다.

 

 우리는 장래의 이득만을 최우선시하며 지금 이 순간인 현재를 희생시키는 “개미와 베짱이” 식의 삶의 방식을 강제당하고 있다. “장래를 위해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 “미래를 위해 힘든 것을 견뎌내고 일을 해야 한다”.

 

 물론 장래를 대비하여 열심히 하는 것은 좋은 것이지만 지금이라는 시간도 풍요롭게 지낼 수 있어야 한다. 장래의 이득보다도 현재의 친구들과의 대화나 관계를 풍요롭게 해 가고 싶다.